편식적 ㅣ슐랭 ㅣ씨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전시들 중 나는 나의 일정과 취향을 고려해 전시장을 찾아간다. 그에 대한 감상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면서 몇 개의 잔상으로만 남을 때가 많다.
전시 도면에는 이미 작품마다 넘버링을 해서 관객들이 어떤 동선으로 감상하면 좋을지 계획되어 있다. 나는 이 넘버링을 마치 작곡가가 정해 놓은 악보라고 상정하고 관람객으로서 어떻게 나의 방식대로 전시를 따라갔는지 기록한다. 내가 그곳에서 어떤 것을 인상 깊게 보았는지, 감상자로서 나의 경험을 드로잉으로 가시화한다.
1) 도면 다시 그리기
① 《안은미래》(서울시립미술관, 2019)
나는 전체 전시공간을 시각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복기하고자 할 때 주로 도면을 그린다. 내 기억을 더듬어서 그리기 때문에 어떤 공간은 유난히 커지거나 심지어 생략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안은미래》전의 경우, 처음 드로잉 기록을 시작할 때 공간 파트를 이어 그리다보니 전체 공간이 가물가물했고 세부 공간의 경험은 기억 속에서 엉켜 있었다. 그래서 공간 모양을 다시 그리며 내 전체 감상경험을 퍼즐 맞추듯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억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것을 주의 깊게 보았고 어떤 것을 흘려 보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②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아트 스페이스 풀, 2020)
부감 시점으로 전시 공간을 그려본 것이다. 각 작품의 형태와 색을 간단하게 그려서 전시의 전체 인상을 떠올리기 쉽도록 했다. 역시 몇 개의 작은 작품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드로잉한 종이 위에 트레이싱지를 얹어 나의 동선을 그렸다. 그 결과를 보면 내가 입구에서 들어와 ㄱ공간에서는 갈지자로 움직인 반면 ㄴ공간에서는 두어번 뱅글뱅글 돌며 오래 관람한 것을 알 수 있다. ㄴ공간을 본 후에는 ㄱ공간의 몇 개의 작품을 다시 보고 전시장을 나왔다.
2) 작품들과 감정선을 잇기
①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0)
내가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서 접한 작품들을 그래프의 x축 하단에 왼쪽부터 순서대로 배열했다. 전시장에서 맨 처음의 경험은 지킴이이자 퍼포머인 작가를 전시 공간 구석에서 발견한 것이어서 가장 상단, 왼쪽에서 시작했다. 그후 전시의 3개 서문을 펼쳐본 이 뒤이어 등장한다. 하나의 전시를 세 가지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 서문의 콘셉트 자체에 굉장히 공감했기 때문에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감정선의 피치가 올라갔다. 뒤이어 마치 전시장 벽의 글을 연상시키는 텍스트 설치물을 발견했다. 이에 대한 감정선은 서문을 볼 때보다는 흥미도가 살짝 떨어졌다. 작품과 작가의 퍼포밍, 서문을 동시에 보는 중첩 감상구간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전시기획 구조화
①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0)
시간 순으로 전시의 구성요소를 나열한 그림에서 더 나아가 어떤 요소를 가장 공감하면서 보았는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마치 계란의 단면도처럼 그려냈다. 요리로 비유할 때, 내가 먹은 요리의 재료들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맛있었는지를 펼쳐놓는 것이 이전의 나열식 그림이었다면 이번 경우에는 재료의 어떤 조합과 구성이 나에게 그런 감상이 들게 했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이 역시 기억이 잘 안 나는 부분은 굳이 채우지 않았다. 인상 깊은 것은 시각적으로 눈에 띄게, 덜 중요한 것은 상대적으로 흐리게 처리했다.
② 《홀(HALL)》(시청각 랩, 2020)
이 역시 전시 구성 요소들의 단면을 시각화한 것이다. 하지만 원의 가장자리에 파란색 점으로 형상화한 『계간시청각』 책자들이 위성처럼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단면의 바깥을 넓게 에워싼, 시청각에서의 풍부한 실험과 이전 담론들이 『계간시청각』이라는 책자로 툭툭 튀어나오고 그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주변을 다시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4) 특정작품에 대한 감상경험 시각화
① 《올해의 작가상》(국립현대미술관, 2019)
보통 4번은 기록의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패턴이다. 일련의 복기 작업 후 내가 이 전시에서 가장 소장하고 싶은 감상 경험을 남겼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박혜수 작가의 〈퍼펙트 패밀리〉 무빙 사인을 본 순간을 그린 것을 예로 들면, 이때 나는 그 작품을 구체적인 모습이 아닌 그것을 오랫동안 멍하니 보고 있던 관객으로서 내 모습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