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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적 ㅣ슐랭 ㅣ씨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전시들 중 나는 나의 일정과 취향을 고려해 전시장을 찾아간다. 그에 대한 감상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면서 몇 개의 잔상으로만 남을 때가 많다.
전시 도면에는 이미 작품마다 넘버링을 해서 관객들이 어떤 동선으로 감상하면 좋을지 계획되어 있다. 나는 이 넘버링을 마치 작곡가가 정해 놓은 악보라고 상정하고 관람객으로서 어떻게 나의 방식대로 전시를 따라갔는지 기록한다. 내가 그곳에서 어떤 것을 인상 깊게 보았는지, 감상자로서 나의 경험을 드로잉으로 가시화한다.
1) 도면 다시 그리기
① 《안은미래》(서울시립미술관, 2019)
나는 전체 전시공간을 시각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복기하고자 할 때 주로 도면을 그린다. 내 기억을 더듬어서 그리기 때문에 어떤 공간은 유난히 커지거나 심지어 생략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안은미래》전의 경우, 처음 드로잉 기록을 시작할 때 공간 파트를 이어 그리다보니 전체 공간이 가물가물했고 세부 공간의 경험은 기억 속에서 엉켜 있었다. 그래서 공간 모양을 다시 그리며 내 전체 감상경험을 퍼즐 맞추듯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억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것을 주의 깊게 보았고 어떤 것을 흘려 보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